어제 북클럽에서 한 회원님의 질문이 오래 남았습니다.
“두려움도 성장의 동력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?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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예를 들어, 누군가 발표 중 작은 실수를 합니다. 모두는 가볍게 넘겼지만, 그 사람은 집에 와서도 그 장면을 계속 다시 봅니다. 그날 밤부터 발표 영상을 찾아보고, 말투를 고치고, 다음에는 절대 부족해 보이지 않기 위한 리스트를 씁니다. 주변에서는 “대단하다, 피드백을 바로 성장으로 바꾸네”라고 칭찬합니다.
또 어떤 사람은 중요한 자리에서 한 번 무시당한 뒤, 절대 다시 무시 당하지 않겠다고 결심합니다. 더 큰 목표를 세우고, 더 크게 말하고, 더 오래 버팁니다. 겉으로 보면 둘 다 성장처럼 보입니다. 몸을 만들고, 커리어를 키우고, 자신을 증명하니까요.
그런데 저는 궁금해졌습니다. 이건 정말 성장일까요, 아니면 다시 수치심을 느끼고 무시당할까 봐 두려운 마음이 운전대를 잡은 걸까요?
혹시 우리는 더 준비하고, 더 증명하고, 더 완벽해지려는 마음을 “나는 기준이 높은 사람이니까”라고 해석하고 있진 않을까요?
성취 동기가 높은 사람일 수록 두려움을 멈춤의 신호가 아니라, 더 나아져야 한다는 신호로 해석합니다. 그래서 불안은 성실함의 얼굴을 하고, 자기압박은 높은 자존감처럼 보이기도 합니다.
성과는 나고 있을 수 있습니다. 발표는 끝났고, 런칭은 잘 됐고, 클라이언트는 만족했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. 그런데 밤이 되면 이미 작은 실수, 부족함에 속상해하며, 증명할 수 있는 다른 길을 찾고 있습니다.
제가 코칭에서 자주 보는 건, 실력이 부족한 사람이 아니라 너무 오랫동안 두려움을 성실함으로 착각해온 사람들입니다. 겉으로는 성과가 나고 있어도, 내면의 비용은 계속 커질 수 있습니다.
그렇다면 어떻게하는게 내 스스로에게 친절한 길일까요? 두려움을 없애는 것도, 두려움으로 나를 밀어붙이는 것도 아닙니다. 두려움은 신호입니다. 동력은 진짜 가치에서 와야 합니다. 두려움은 “여기가 중요하다”고 알려줄 수 있습니다. 어디로 갈지는 두려움이 아니라 가치가 정해야 합니다. 두려움이 선택권을 빼앗기 전에 몸과 마음의 신호를 읽고, 스스로에게 진실된 동기로 돌아오는 것입니다.
마음을 다루는 오래된 연습이 하나 있습니다. 네 글자로 기억하면 쉽습니다.
R — 알아차리기(Recognizing). 지금 이건 게으름이 아니라 두려움일 수 있다고 이름을 붙입니다.
A — 허용하기(Allowing). 두려움을 없애려 애쓰는 대신, 잠시 여기 있어도 된다고 인정합니다.
I — 살펴보기(Investigating). 지금 내 몸은 어디가 조여 있는지, 머릿속은 어떤 최악의 시나리오를 반복하는지 봅니다.
N — 돌보기(Nurturing). 나를 더 몰아붙이기 전에, 판단력과 선택권을 회복합니다.
이건 두려움을 없애기 위한 연습이 아닙니다. 두려움에 끌려가지 않기 위한 연습입니다. 겁에 질린 마음은 멀리 못 가니까요. 자기자비는 나약함이 아니라, 압박 속에서 판단력을 되찾는 성과 역량입니다.
이번 주 한 가지 실천: 두려움이 성실함처럼 올라오는 순간을 딱 한 번만 알아차려 보세요. 그리고 스스로에게 물어보세요. “나는 지금 더 잘하려는 걸까, 두려워서 나를 다그치는 걸까?” 답을 당장 바꾸지 않아도 괜찮습니다. 알아차리는 것만으로 이미 시작입니다.
두려움은 나를 멈추게 하는 벽이 아닐 수 있습니다. 하지만 나를 몰아붙이는 연료가 되어도 안 됩니다. 두려움은 신호입니다. 그 신호를 읽은 뒤, 우리는 더 정직한 동기에서 다시 선택해야 합니다.
현존으로 성취를 디자인하며,
하이퍼포먼스 코치 빅토리아

